바이오필름과 칫솔

고압수로도, 강한 세제로도 안 벗겨지는 것

고압수로도, 강한 세제로도 안 벗겨지는 것

세차장에서 일해 본 사람은 압니다. 차체에 한 번 자리 잡은 그 미끌미끌한 막은, 고압수 노즐을 바짝 들이대도 벗겨지지 않습니다. 강알칼리 세제를 흠뻑 뿌려 한참 불려도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스펀지나 브러시로 직접 문질러야 그제야 벗겨집니다.

세제와 물의 힘으로 안 되는 게 손으로 문지르면 된다는 건, 상식적으로 좀 이상합니다. 그런데 이건 세차장만의 일이 아닙니다. 같은 일이 매일 아침 우리 입안에서, 그리고 반려동물의 잇몸 위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유는 하나입니다. 그 막이 균이 지어 올린 구조물이기 때문입니다.

이걸 바이오필름(biofilm, 세균이 표면에 만드는 끈끈한 막)이라고 부릅니다.

때가 아니라 건축물

먼지나 기름때는 표면에 얹혀 있습니다. 그래서 물의 힘이나 계면활성제로 떼어낼 수 있습니다. 바이오필름은 다릅니다.

세균은 표면에 자리를 잡으면 자기 몸 밖으로 끈끈한 고분자 물질을 분비합니다. 이걸 EPS(extracellular polymeric substance, 세포외 고분자 물질)라고 합니다. 다당류, DNA 조각, 단백질이 뒤엉킨 일종의 젤입니다.

세균은 이 젤 속에 스스로를 파묻고, 서로를 붙들고, 표면에 단단히 접착합니다. 수많은 균이 공동주택을 짓고 그 안에 입주해 사는 형태입니다. 한 마리씩 떠다니는 것과는 다릅니다.

이 EPS 매트릭스가 바이오필름의 모든 방어력의 핵심입니다. 바이오필름이 성숙하면 EPS 덕분에 구조가 물리적으로 안정되고, 기계적 제거와 항균제, 숙주 면역에도 버팁니다.

즉, 물리적으로 떼어내려는 힘에도, 화학적으로 죽이려는 약물에도 동시에 버팁니다. 이 두 가지가 왜 따로 노는지를 이해하면 세차장의 미스터리가 풀립니다.

고압수와 세제로 안 되는 이유

압력·화학·마찰에 대한 바이오필름의 반응

압력에는 점탄성으로 버팁니다

바이오필름의 가장 중요한 물성은 점탄성(viscoelasticity)입니다. 점성(액체처럼 흐르는 성질)과 탄성(고무처럼 되돌아오는 성질)을 동시에 가집니다. 피부나 혈액이 그렇듯, 고체와 액체의 성질을 함께 가진 물질입니다.

이게 왜 문제냐면, 고압수처럼 한 방향으로 꾸준히 밀어붙이는 힘을 바이오필름은 버티지 않고 흘려보내기 때문입니다. 압력을 받으면 매트릭스가 변형되며 그 에너지를 흡수해 분산시키고, 압력이 빠지면 고분자 사슬이 원래 형태로 슬그머니 되돌아옵니다.

사출 성형할 때 탄성 좋은 수지를 누르면 변형됐다가 힘을 떼면 복원되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끊어지지 않고 늘어났다 줄어듭니다.

그래서 성숙한 바이오필름은 지속적인 유체 전단 응력이나 높은 기계적 압력 아래에서도 표면에서 떨어져 나가기 어렵습니다. 고압수는 '강하긴 한데 균일하게 미는 힘'입니다. 바이오필름 입장에서 이건 가장 받아넘기기 쉬운 종류의 힘입니다.

세제는 안쪽까지 도달하지 못합니다

그럼 화학으로 녹이면 되지 않을까요. 여기서 두 번째 장벽이 나옵니다. 항균제는 EPS 장벽을 통과해 확산하지 못하고, 그 결과 약물이 안쪽으로 침투하는 게 제한됩니다.

세제나 항균제를 표면에 아무리 들이부어도, 끈끈한 매트릭스가 약물의 침투를 막습니다. 표면의 균 몇 마리는 닿을지 몰라도, 젤 깊숙이 박혀 있는 본대(本隊)에는 유효 농도가 도달하지 못합니다.

표면만 살짝 무력화되고, 구조물 자체는 멀쩡히 남습니다. 페인트로 비유하면, 두껍게 굳은 도막 위에 신너를 뿌려도 표면만 물러질 뿐 바닥까지 한 번에 녹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마찰에는 구조가 깨집니다

압력에도 안 되고 화학에도 안 되는 게 왜 문지르면 될까요.

점탄성 물질은 느리고 균일한 힘은 흘려보내지만, 국소적이고 직접적인 전단(긁힘)에는 응집이 깨집니다. 브러시 모나 스펀지는 매트릭스의 한 지점을 집어 비틀고 끌어냅니다.

흘려보낼 여유를 주지 않고 구조의 결합 자체를 국소적으로 뜯어냅니다. 매트릭스가 한 번 찢어지면, 그 안에 보호받던 균은 떠다니는 단일 세포 상태로 노출되고, 이 상태가 되어야 비로소 약해집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압력은 흘려보내고, 화학은 막아내지만, 물리적 마찰만은 구조 자체를 부숩니다.

그리고 이게 정확히 치아 위에서 벌어지는 일입니다

치태(齒苔, dental plaque)는 비유가 아니라 말 그대로 바이오필름입니다. 입안 세균이 치아 표면에 분비한 EPS 매트릭스 속에 자리 잡은, 자동차 차체의 그 막과 같은 종류의 구조물입니다.

가글만으로는 치태가 제거되지 않습니다. 항균 성분이 든 구강청결제는 떠다니는 균을 줄이는 데는 도움이 되지만, 매트릭스에 보호받는 치태 구조물 자체는 건드리지 못합니다. 입을 헹구는 건 세제를 뿌려 불리는 단계까지입니다. 구조물을 부수는 마지막 한 단계, 물리적 마찰은 칫솔모가 직접 닿아야만 이루어집니다.

치태는 말 그대로 바이오필름

반려동물에게도 예외는 없습니다

반려동물 구강 관리 시장에는 '바르고 끝', '먹이면 끝'을 약속하는 제품이 많습니다. 음수에 타는 첨가제, 입에 뿌리는 스프레이, 씹는 덴탈껌. 편하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고, 실제로 입냄새를 잠시 덜어주기도 합니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따라왔다면, 이 제품들이 무엇을 하고 무엇을 못 하는지도 분명해집니다. 이들은 전부 헹구고 뿌리는 단계에 머무릅니다. 표면의 균에는 작용해도, 잇몸 경계에 자리 잡은 바이오필름 구조물은 손대지 못합니다. 고압수와 세제가 차체의 막을 못 벗겼던 것과 똑같은 이유에서입니다. 그러니 이런 제품은 칫솔질을 대신하지 못합니다. 보조로 두는 편이 맞습니다.

치태라는 구조물을 실제로 무너뜨리는 행위는 단 하나, 칫솔모가 이빨 표면에 닿아 물리적으로 문지르는 것뿐입니다. 번거롭고, 화학적 처치보다 손이 많이 가는 일입니다. 하지만 이 단계를 건너뛰면, 바이오필름은 점탄성으로 압력을 흘려보내고 매트릭스로 약물을 막아내며 잇몸 아래에서 계속 자랍니다. 그래서 다음 글에서는 칫솔의 어떤 형태가 이 마찰을 가장 잘 전달하는지 이어서 설명합니다.